자기라 불리는 남자

일본인 남편의 한글 편지

히로무 2014. 12. 1. 00:00


결혼 17주년 기념으로 밖에서  

외식을 한 후 자기야가 내 손에 살며시 쥐어준 봉투 하나 

갑자기 웬 봉투 ??  돈이라도 들었나 

 열어 보니 

정말로 오래간만에 자기야의 편지이다 

한글로 쓴 편지 


연애시절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결혼후 히로가 태어날때까지만 해도 

한달에 한번은 한글 편지를 써 주더니만 

언제부터인가  자기야에게서 한글 편지를 받는건 

연중 행사처럼  뜸해 졌다 

 

처음 자기야와 내가 만났을때 

자기야가 할 수 있는 한국말은 단한마디 

"안녕하세요" 였다 


그후 3개월만에 처음으로 한글 편지를 받았다 

물론 엉성하고 틀린 곳 투성이의 편지였지만 

그후 매주 계속 되어지는 한글 편지


난 또 무드없이 자기야의 편지를 복사해서 

틀린곳을 빨간 볼펜으로 고쳐서 주곤 했었다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하지만 그 덕분에 짧은 시간에 

자기야는 한국어가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밖에 말 못하던 일본 남자가 

일년을 한국에 살면서 배운 한국말 

그것도 17년 전에...

여전히 틀린 곳도 많지만 

17년전 일년간 배운 한글로  

지금은 한글을 전혀 쓸 일도 없는 일본에 살면서 


(자기야가 한국어로 말하는건 나와 말할 때 뿐이고

그것도 가끔 ..

한글을 읽고 쓸일은 전혀 없다 )


잊지 않고  결혼 기념일이라고  한글로 

편지를 써 준 자기야가 참 고맙다 







요 몇년간은 가끔 자기야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본어 편지였다 



몇년만에 받아 본 자기야의 한글 편지 

아직까지 한글을 잊지않고 

이렇게까지 쓸 수 있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역시 같은 편지라도 일본어로 받는 편지와 

한글로 받는 편지는 그 감동이 다르다 

특히나 일본에서 한글을 전혀 접할 일 없는 자기야가 

마누라 나라 말이라고 한글을 17년간 잊지 않고 

잘 기억해 주는것도 고맙고 

결혼 17주년을 한글로 편지를 쓰겠다

생각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사실 일본인이 일본에 살면서 

17년전  1년간 배운 한글 실력으로 써 내려간 편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틀린곳도 많은 자기야의 한글 편지이지만 

그 어떤 문맥이 깔끔한  감동적인 글 보다도 

틀린 곳 많은 자기야의 편지가 더 감동적이고 좋다 


편지를 받은후 자기야 앞에서 그자리에서 읽고 

답을 할려니 괜히 쑥스러워서 

내가 던진 첫마디가  이것 또한 무드 없이 


 또 빨간 볼펜으로 틀린 곳 체크해서 

자기에게 줘야겠네...


에고 ..무드 없는 여자 같으니....

그냥 고마워 !  사랑해 !  하면 될것을.....



결혼 한지 17년이 되었지만 

중1  아들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도 밖에 나가면 

자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내가 팔짱을 끼기도 하고 

둘이 손을 잡고 걷기도 한다 


  나이 들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도 

두 손 꼭 잡고 걸어 가는 부부로 있기를 

기원해 본다 

 .



'자기라 불리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 큰 이남자   (0) 2014.12.14
도시락에 이것만은...  (1) 2014.12.05
이건 아니지...  (0) 2014.11.17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0) 2014.11.08
뭐 그럴수도 있지...  (0) 201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