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7주년 기념으로 밖에서
외식을 한 후 자기야가 내 손에 살며시 쥐어준 봉투 하나
갑자기 웬 봉투 ?? 돈이라도 들었나
열어 보니
정말로 오래간만에 자기야의 편지이다
한글로 쓴 편지
연애시절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결혼후 히로가 태어날때까지만 해도
한달에 한번은 한글 편지를 써 주더니만
언제부터인가 자기야에게서 한글 편지를 받는건
연중 행사처럼 뜸해 졌다
처음 자기야와 내가 만났을때
자기야가 할 수 있는 한국말은 단한마디
"안녕하세요" 였다
그후 3개월만에 처음으로 한글 편지를 받았다
물론 엉성하고 틀린 곳 투성이의 편지였지만
그후 매주 계속 되어지는 한글 편지
난 또 무드없이 자기야의 편지를 복사해서
틀린곳을 빨간 볼펜으로 고쳐서 주곤 했었다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하지만 그 덕분에 짧은 시간에
자기야는 한국어가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밖에 말 못하던 일본 남자가
일년을 한국에 살면서 배운 한국말
그것도 17년 전에...
여전히 틀린 곳도 많지만
17년전 일년간 배운 한글로
지금은 한글을 전혀 쓸 일도 없는 일본에 살면서
(자기야가 한국어로 말하는건 나와 말할 때 뿐이고
그것도 가끔 ..
한글을 읽고 쓸일은 전혀 없다 )
잊지 않고 결혼 기념일이라고 한글로
편지를 써 준 자기야가 참 고맙다
요 몇년간은 가끔 자기야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본어 편지였다
몇년만에 받아 본 자기야의 한글 편지
아직까지 한글을 잊지않고
이렇게까지 쓸 수 있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역시 같은 편지라도 일본어로 받는 편지와
한글로 받는 편지는 그 감동이 다르다
특히나 일본에서 한글을 전혀 접할 일 없는 자기야가
마누라 나라 말이라고 한글을 17년간 잊지 않고
잘 기억해 주는것도 고맙고
결혼 17주년을 한글로 편지를 쓰겠다
생각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사실 일본인이 일본에 살면서
17년전 1년간 배운 한글 실력으로 써 내려간 편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틀린곳도 많은 자기야의 한글 편지이지만
그 어떤 문맥이 깔끔한 감동적인 글 보다도
틀린 곳 많은 자기야의 편지가 더 감동적이고 좋다
편지를 받은후 자기야 앞에서 그자리에서 읽고
답을 할려니 괜히 쑥스러워서
내가 던진 첫마디가 이것 또한 무드 없이
또 빨간 볼펜으로 틀린 곳 체크해서
자기에게 줘야겠네...
에고 ..무드 없는 여자 같으니....
그냥 고마워 ! 사랑해 ! 하면 될것을.....
결혼 한지 17년이 되었지만
중1 아들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도 밖에 나가면
자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내가 팔짱을 끼기도 하고
둘이 손을 잡고 걷기도 한다
나이 들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도
두 손 꼭 잡고 걸어 가는 부부로 있기를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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