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버지는 오빠와 언니에겐 무척이나 엄격한 아버지셨다
그러다 보니 오빠와 언니는 아버지를 어려워 하는 편이었다
삼남매의 막내인 나는 달랐다
아빠 아빠 하며 달라 붙는 나에겐 아버진 뭐든지 OK였다
영악한 난 아버지가 막내인 날 이뻐 하신다는걸 알고
아빠에게 더 달라붙고 애교를 부렸던것 같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시키곤 했었다
난 오빠와 언니와 달리 내가하고 싶은건 뭐든지 다하며 컸다
처음엔 반대하던 아빠도 내가 애교부리며 부탁하면 다 들어 주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 아빠 하는 나를 오빠는 못 마땅해하며
아버지라 하지 않는다고 혼나기도 했었다
난 철이 없는지 아직도 아빠라 부른다
우리 오빤 그런 나를 이제는 포기한 상태이고..
결혼전 자기야를 데리고 친정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때의 일이다
자기야가 한국말로
아버님 안녕...
채 인사도 끝나기 전에 아버진 휑하니 방을 나가 버리셨다
일본인인 자기야와의 대화조차 거부하셨다
어느정도의 반대는 생각했었지만 아빠의 그 차가움에 가슴까지 서늘해졌다
그때까지 하고 싶은일 다 하고 자란 나에게 아빠가 보이신 처음의 반대였다
지금까지 자상하신 아빠였기에 나 또한 충격이 컸었고
참 많이도 울었었다
아빠가 반대하시기에 더욱 더 자기야와 결혼을 해야
마음을 먹었던것 같다.(지금 생각하면 참 괘씸한 딸이다)
엄마는 아빠 곁에서 아무말도 못하시고
작은어머니와 고모들의 설득에 철부지 그리고 막내딸의 고집에
아빤 일본인 사위를 허락을 할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한 후 일본에 오기 전날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이다
한국에서 결혼해 한국에 살면 어디에 살든
풍문에라도 니가 잘산다 어쩐다 듣겠지만
니가 일본에 살면 니가 맞고 사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나는 모른다
한국이라면 내가 가서 널 도와주고 막아주고
안 되겠다 싶음 널 데려 올수도 있는데
난 일본말도 모르고 니가 어찌 사는지..
이젠 난 널 지켜수가 없다
아버지로써 더 이상 너에게 아무것도 못해준다
서울에서 혼자 십년가까이 살고 있는 막내딸이 안스러 당장 회사 그만두고
내려 오라고 하셨던 친정 아버지셨다
직장까지 그만 두게하고 곁에 두고 싶어 하셨는데
서울도 아닌 일본으로 가겠다니..
아빠가 결혼을 반대하신 이유를 듣고서 또 한번 많이도 울었었다
아빠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 고마워서.
지금은 우리 아빠 자기야에게 전서방 전서방 하시며
무척이나 이뻐하신다
한국에 나갈때마다 시위가 좋아한다며 직접 시장에가서
영계를 사다가 친정아빠표 맛있는 삼계탕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
제대로 된 너무 맛있는 친정아빠표 삼계탕이다
6년전 아빠의 위암 소식을 일본에서 듣고 많이도 울었었다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위암은 극복 하셨지만
언제나 크게만 느껴졌던 아빠가 이제 칠십을 넘기시고 여기저기 편찮으시단다
사실 오늘은 할머님 제사이다
아까 전화 드렸더니 모두들 모여 제사 준비하고 계신다고
아빠가 "너도 왔음 좋았을껄" 하셨다
이 글을 쓰면서 아빠 생각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아빠 나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마!
아빠 보고 싶다.
아빠가 만든 삼계탕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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