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라 불리는 남자

쌈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인 남편

히로무 2015. 2. 18. 00:00


일본에서 냉이를 맛 보기는 너무 어렵다 

적어도 나에게는 ...

냉이를 먹지 않는 일본인들

그러다 보니 당연 슈퍼나 시장에서 돈을  주고 

냉이를 살수도 없고 

어디 교외로 나가면 냉이를 캘수 있는 곳도 있겠지만 

난 쑥이나 달래 미나리 등등 ..

꽤 많이 알고 있는 편인데 

냉이는 잘 구별을 못해서 캐 올수도 없다 

그래서 일본에 아주 아주 오래 살면서도 

일본산 냉이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우리집 주변에도 쑥이나 달래는 이 또한 일본인들이 

뽑아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캐지 않으니  봄이 되면

쑥이랑 달래가 천지다 

하지만 냉이는 ... 

내가 몰라서 못 캐는 거겠지만 

울집 주변의 냉이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지...


뽑아 논 냉이는  뿌리보고 냄새 맡아보면

그래 이게 냉이야 라고 확실히 알겠는데 

잎만 보고서는 이게 냉이인지 

잡초인지 알지를 못해서 캘수가 없다 

 


아이 봄 방학때 한국에 나가면 냉이를 잔뜩 사 들고 와 

냉동 해 뒀다가 조금씩 꺼내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다 

물론 냉동 해 둔 냉이도 다 떨어진지 오래전이다 


그런데 일본에 산지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냉동이 아닌 신선한 일본 냉이 한줌이 

우연찮게 내 손에 들어 왔다 

살짝 코 끝에 갖다대니 향긋히 풍겨 나오는 냉이의 내음

감동 그 자체다 


마음같아선 냉이를 삶아서 조물 조물 무쳐 

냉이 내음에 푹 빠져 보고 싶지만 

단 한 움큼 밖에 안되는 귀한 냉이

무침으로는 택도 없다 


저녁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 된장 찌개이다 






된장 찌개..

우리 부부에게는 추억의 한국 요리이다 

일본인인 자기야와 나는 한국에서 만났고 

한국에서 결혼을 했으며 

한국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 했었다 

그때는 자기야는 백수였고 

(한국어학원을 다니고는 있었지만 ..)

난 너무 바쁜 직장인..


신혼 한달쯤 되었을까

어느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자기야가 저녁을 만들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야가 처음으로 만들어 준 요리이며 

게다가 처음으로 만들어준 한국요리였다






 메뉴는 된장찌개 

밥상에 따끈한 밥 한그릇과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 한접시 

그리고 펄펄 끓는 된장 뚝배기 하나 

소박했지만 나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얼마나 자기야가 이쁘던지..


보기엔 정말 먹음직스런  된장 뚝배기 

한입 떠 먹었다.


잔뜩 기대하고 먹은 한입의 맛이....

깔끔하지가 않고 뭔가 텁텁하다 

뭐지? 이 깔끔하지 못한 텁텁한 맛은 ???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으니 

내가 만든는거 본 대로 그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혹시 고추장이라도 넣었나 물어보니 

냉장고에 든 된장으로 제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맛이 왜 그리도 텁텁 하던지...


물론 자기야도 먹으면서 내가 만든 된장찌개랑 뭔가 다르다며 

똑같이 만들었는데 왜 맛이 다르냐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 갸웃


하지만 된장찌개가 좀 텁텁하면 어때

자기야의 정성과 사랑에 

감사하며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된장찌개



자기야가 만든 첫 요리이자 첫 한국음식인 

된장찌개를 먹은 그 주말 


왜 자기야가 만든 된장 찌개가 텁텁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주말 메뉴가 쌈밥이었던것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냉장고에서 쌈장을 꺼내들자



  그래.. 이거야! 

난 이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왜 맛이 자기가 만들때랑 달랐지...


 자기야 된장찌개를 이걸로 만들었다고???


그랬다 

된장찌개를 쌈장으로 만들었던것이었다


 자기야 이 된장은 쌈장이고 

된장찌개는 이 된장으로 만들어야지...


 에??? 같은 된장 아니야?

된장도 종류가 있는거야?



자기야 덕분에 난 

쌈장으로 만든 된장 찌개를 먹어 본 여자가 되었다 

쌈장으로 만든  된장 찌개를 먹어 본 여자가 

나 말고 또 있을까?






귀하디 귀한  냉이로 넣고 팔팔 끓는 된장 찌개를  보니

그때 생각이 떠 오른다 

매운 청량 고추가 있음 한두개 쏭쏭 썰어 넣어주면

최고일텐데 좀 아쉽다 ..



저녁 밥상에 된장 찌개를 내 놓고 

자기야에게   한국에서 끓였던 

자기야표  쌈장 된장 찌개 이야기를 꺼내니 

자기도 생각이 난다면 해 맑게 웃는다 



어쩌다 손에 들어온 귀하디 귀한 냉이 된장 찌개 덕분에 

 한국에서의 짧았던 신혼 그때 그시절

추억으로 빠져 드는 오늘은  비까지 내리고 있다 


쌈장으로 만든 된장 찌개 .. 

그 맛이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자기야에게 한번 더 쌈장 된장찌개를 만들어 달라고 해 볼까나..






PS  :  동경 근처에 사시는  분들..

어디 냉이 캘 수 있는 곳 있으면

살짝 알려 주세요  

하긴 알아도 냉이 구분을 잘 못해서 

캘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냉이  캐러 가고 싶다